판타스틱 동화 같은 무드에는 미술적 요소가 기여한다. 코우즈키 저택이 혼합 양식일 거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서양식과 일본식, 한식 건물이 덩어리째 연결돼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다른 문화가 혼재하던 시기임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과장인가.
=천장은 양식으로, 바닥은 일본식으로 섞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첫째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둘째 국적 불명의 괴상한 스타일은 역겹기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상한 것, 낯선 것이지 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일본에서 양관과 화관이 붙어 있는 집을 딱 한 군데 찾아 찍었지만 양관 건물 외관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CG로 수정했고, 대신 화관은 그대로 잘 썼다. 한편 별채에 코우즈키가 꾸민 서재는 그의 모든 것이 망라된 일종의 낙원이다. 서고는 영국식 도서관풍이고 중간의 넓은 다다미 공간을 지나면 도코노마식 무대가 있다. 화식과 양식 건물을 오갈 때 인물들이 신을 벗어다 신었다 하는데 그런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부자들의 방식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