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인현왕후의 사후 숙종에게 희빈 장씨의 저주굿을 발고하였다.[6] 일각에서는 희빈 장씨 사후 숙빈 스스로 왕비가 되고자 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는 추측이다.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 되지 못한다는 국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숙빈은 다음 왕비 후보가 될 수 없었다. 숙종의 후궁 중에는 서인 명문가 출신인 귀인 김씨가 있었고, 만약 김귀인이 명문가 출신이 아닌 궁인 출신이었어도, 소생이 있는 숙빈 최씨가 왕비가 되면 차기 왕위계승서열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숙빈 최씨, 귀인 김씨 모두 서인 세력이었고 서인에게 다음 정권이 돌아갔기 때문에 굳이 왕비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면 자녀가 없는 명문가 출신인 귀인 김씨가 오히려 유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