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쇼핑왕 루이’ 남지현, 베테랑이라기엔 너무도 소녀 같은, 이 요물(妖物)그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느낌이다. 배우 남지현과의 인터뷰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았다. 물론 표지는 상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치장돼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짜임새도 있으면서 신념도 엿보이고 무엇보다 중간중간 보이는 명문장들에 눈이 번쩍 뜨인다. 배우와 인터뷰를 하면서 때로는 대놓고 아니면 속으로 무릎을 쳤던 기억이 언제인지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 책의 장르는 무엇일까 확실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 남지현이라는 ‘책’은 탄탄하고 충실한 구성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그의 외면과 내면은 갖가지 ‘아이러니’로 채워져 있다. 남지현은 이제 만으로 21세가 된 어린 배우이지만 아역시절을 합쳐 벌써 13년의 연기경력을 가진, 바꿔 말하면 연기하지 않고 산 날보다 연기하며 산 날이 훨씬 긴 인물이다. 그리고 외모에서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총명함이 엿보이지만 속으로는 깊은 사유의 결과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그는 배우 서인국과 함께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 고복실 역으로 성공적인 미니시리즈 신고식을 치렀다. 5% 남짓이던 시청률은 뻔한 설정을 돌파하는 재치있는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 제작진의 재치로 두 배가 넘는 시청률 상승을 거두며 끝났다. 배우 남지현의 잠재력은 이제 갓 드러났을 뿐이다. “어찌보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드라마였죠. 자칫 ‘아웃 오브 안중(안중에도 없는)’ 될 수 있는 작품이라 걱정도 했지만, 다 제쳐두고 목표를 정했어요. 단지 처음 먹은 마음을 유지하면서 끝내자고요. 처음 주연이었기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일 자세였고, 잘 되도 좋고 안 되도 잃을 게 없었어요. 하지만 결과가 정말 좋아 첫 걸음을 가볍게 뗄 수 있었어요.” 남지현이 스스로의 미니 데뷔작을 ‘약체’로 순순히 인정하고 이에 대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온 점에서 벌써 감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 흔한 21살 배우에게서 나오는 마음일까. 그는 그의 작품을 둘러싼 외부의 시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재화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안 되도 잃을 게 없다는 패기도 머금고 있었다. “<쇼핑왕 루이>는 ‘3박자’가 잘 맞춰진 드라마예요. 사실 ‘클리셰(각종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에서의 뻔한 설정)’을 모아놓은 드라마죠. 기억상실, 재벌 2세, 산골 소녀, 기억을 잃었다 찾으면서 위기 봉착, 그 다음에 사랑…. 번한 소재를 갖고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짜내는 대본. 거기에 대본을 살려주는 ‘깨알’ CG(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촬영장에서 놀 수 있는 배우들이 모였죠. 무엇보다 시청자분들이 계셨어요. 입소문을 내주시고 끝까지 지켜봐주신 의리, 이 모든 게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그는 <쇼핑왕 루이> 선전의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한 분석을 갖고 있었다. 이전에 연기했던 역시 산골소녀 <가족끼리 왜 이래>의 서울이와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순실이 등 유난히 ‘때 칠’을 많이 한 그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나름의 시각을 보였다. “서울이는 가족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하나의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복실이는 사랑 이야기죠. 성격도 달라요. 서울이는 강렬하고 강단이 있고, 복실이는 여성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연이은 작품에서 모두 서민 또는 시골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게 됐어요. 저의 이미지를 보시고 밝고 맑고 씩씩하고 올곧은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이미지를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또 오지 않겠어요. 변화가 올 때는 기회를 안 놓치면 되고, 자꾸 이런 역만 해서 큰 일 났다는 생각은 없어요.”
본격적으로 남지현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 때다. 남지현은 어린시절 누구나 그렇듯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촬영장을 놀이터 삼아 놀던 아역배우였다. 하지만 자의식이 생기고 연기를 본업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의 마음속에도 많은 소용돌이가 쳤다. 사실 거듭된 고민에 연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에 이유를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모든 힘을 쏟아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가족끼리 왜 이래>를 하면서 해답을 얻기 시작했죠. 선배님이나 선생님들이 촬영장에서 연기에 어떻게 임하시는지 보면서 생각을 고쳤어요. 촬영은 재미있게 해야겠구나. 내 생각이나 고민이 틀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번 드라마도 확실히 재미있게 찍어서, 숙제 같이 찍지 않아도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여느 배우들이 그러하듯 연극영화학과나 방송연예과 등에 수학하지 않았다. 남지현은 현재 서강대학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집인 인천 청라에서 신촌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학우들과 섞이는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가끔 다가오는 사인요청 공세에도 남지현보다 먼저 부끄러워한다. 그에게 학교와 일상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데뷔 이후 학교 또는 일상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다른 또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심리학과를 고른 이유는 간단해요. 그냥 제가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생각을 많이 해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어떤 이유가 있을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학문이 심리학이더라고요. 그래서 골랐어요. 하지만 완전히 그 비밀을 풀기에는 대학교 과정으로는 부족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기초 이론을 배우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부분도 생각하고 진학했어요. 확실히 공부를 하니까 생각의 방향을 여러 갈래로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더 진학하지는 않으려고요. 저는 이미 연기에 취직했고, 더 공부를 하려면 연기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아직 2학년이지만 대학 졸업 이후 자신의 길도 명확하게 정해놓았다. 심리학을 좋아하지만 연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학창시절 문득 일상이던 연기를 운명으로 여긴 다음 남지현은 계속 괴로웠다. 행복하게 연기할 자신이 없었던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의 자리를 뺏지 않을까 괴로움은 더했다. 책임감과 부담감은 더해졌다. 하지만 20살 언저리에서 그는 연기의 작은 행복부터 깨닫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쇼핑왕 루이>는 그 행보의 출발점과 같다.
“여러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아역 때도 단막극을 많이 골랐던 거예요. 요즘도 색다른 이미지에 대한 캐스팅이 많은데 과연 저를 보는 시청자분들이 받아들이실 수 있는 정도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받아들이지 못하신다면 작품, 시청자 뿐 아니라 제게도 타격이거든요. 전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언젠가 기회는 올 거고, 당장은 무리인 걸 알아요. 하지만 언젠가 때가 올 때 잡기 위해 늘 준비해야 하죠.”
그의 수많은 말 중에 조그맣게 탄성을 올리게 하는 부분은 여러 개 있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소신이 있던 배우를 만난 적이 있었을까. 이 경이감은 자연스럽게 남지현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는 당일 마지막 인터뷰였던 기자와의 자리를 끝내며 “오늘도 임무완수~!”를 외치며 기뻐했다. 이렇게 소녀 같고, 때로는 베테랑 같기도 한 ‘요물(妖物)’, 곧 연기 ‘괴물(怪物)’이 돼 돌아올 것만 같다.
正在翻譯中..
![](//zhcntimg.ilovetranslation.com/pic/loading_3.gif?v=b9814dd30c1d7c59_8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