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뭐, 그러니까 .......”
“한동안 나를 못 보았더니, 행여 보고 싶어지기라도 한 것이냐?”
“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그건 그냥 ...... 맞습니다 ! 매일 보던 이 웃집 말복이가 갑자기 안 보이면 궁금한 심정 같은 겁니다 . 그런 티끌처럼 사소한 마음으로 물어봤던 것뿐입니다.”
영의 농에 라온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다 제 반응이 너무 과 했다 생각 되었는지 서둘러 돌아앉아 애먼 서책만 쳐다보았다. 힐끗, 곁눈질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영은 소리 없이 웃었다.
저놈 하는 짓이 날이 갈수록 귀엽게만 느껴지는구나.
그러다 그는 이내 정색했다. 저 녀석만 보면 가구 웃게 되니, 이곳에 더 있다간 저 이상한 녀석의 마수에 영영 사로잡힐 것 같다는 생각에 영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벌써 가는 거야?”
영이 자선당 솟을대문을 막 벗어날 때였다. 담벼락 위에서 나직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온 것이냐?”
“......”
대답 대신 병연은 훌쩍 영의 옆자리로 뛰어내렸다.
“왔으면 들어오질 않고서.”
병연은 자선당 안을 턱짓했다.
“좀 더 놀다 가시지. 저 녀석, 제법 저하를 기다리는 눈치던데.”
“그래?”
버럭 성 을 내던 라온을 떠올리며 영은 흐리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병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말복이가 뉘인지 아느냐?”
“ ...... 큭.”
병연에게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왜 웃는 것이냐? 대체 말복이가 누군 데?”
“저 녀석 이웃집에서 기르던 개 이름이라고 하더군”
“무어라?”
영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감히 왕세자인 나를 한낱 개와 비교해?
만약 다른 이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당장에 치도곤을 내렸을터. 감히 왕세자를 농락한 죄를 물어 참수한다고 해도 이상 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저 맹랑한 녀석의 하는 짓이 참 으로 기가 막혔지만, 밉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
영을 배웅한 병연이 자선당 안으로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였다. 방 안에 들어서자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있는 라온의 뒷모습이 그의 시야에 맺혔다.
“홍 라온.”
병연은 무릎을 굽힌 채 라온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밖에서 라온 과 영의 대화를 모두 들었던 터라, 라온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예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이 척박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녀석이 오늘따라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