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무미건조한 통화가 이어지던 가운데 삑삑- 하는 기계음과 함께 도어락이 해제되고 저 왔어요- 하면서 양 손 가득한 장的繁體中文翻譯

아버지와의 무미건조한 통화가 이어지던 가운데 삑삑- 하는 기계음

아버지와의 무미건조한 통화가 이어지던 가운데 삑삑- 하는 기계음과 함께 도어락이 해제되고 저 왔어요- 하면서 양 손 가득한 장바구니를 든 백기가 모습을 보였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해준이 얼른 다가가 손을 덜어주려하자 그보다 먼저 해준이 통화하고 있음을 알곤 괜찮다며 통화 계속 해요- 누구? 입모양으로 말하는 백기다. 아버지, 해준 역시 입모양으로 말하곤 네, 아버지. 하며 통화를 이어 가려는데, 전화기 너머의 아버지가 백기 목소리를 알아들으시곤 그를 찾으신다.




-백기 왔어?
"예? 아, 네. 오늘 제가 집에서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어, 좀 바꿔봐
"예? 아, 아버지"



뭘 또 바꾸라고, 싶어 난처한 표정으로 백기를 쳐다보는데, 생글생글 웃는 백기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이미 다 안다는 투로 손을 곱게 뻗어 내밀고 있다. 허, 네가 더 어이없어, 장백기. 해준이 실소를 터트리고는 전화기를 건네 주자 평소보다 반 톤은 올라간 목소리가 아버지, 저 백기에요, 잘 계셨어요? 하는게 저보다도 더욱 아버지와 막내 아들의 대화 같아서 살풋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즘 낚시는 어디로 다니세요? 아.. 저도 너무 가고 싶은데 대리님, 아니 해준씨가요... 하하, 네에.. 아버지 그래도 추우니까 따뜻하게 하고 다니셔야해요.. 네, 네에-"





도란도란 살가운 백기의 통화 목소리를 배경 삼아 그가 낑낑대고 들고 와 식탁에 펼쳐 놓은 것들을 장바구니 너머로 살피자 역시나 한 바구니에는 백기가 좋아하는 과자며 주전부리들이 한 가득, 그리고 다른 바구니에는 얼마전부터 백기가 꼭 해주겠다고 벼른 크림파스타 재료가 한 가득이다.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하여간 손도 크지. 그래도 이것저것 고르면서 해맑게 장을 봤을 백기를 생각하니 꽤 귀여워 다시 슬며시 웃음이 나는 해준이었다.







*




"자요"
"혹시 이름 바꿨어? 강백기로?"
"큭, 그러니까 좀 살갑게 하면 좋잖아요. 아버지랑 일해요? 뭐가 그리 딱딱해요?"
"많이 좋아진거야"
"네에- 네에-"



건성으로 답하며 장 봐온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백기의 모습에 뻘쭘해진 해준이 그 뒤를 쫓아 그를 도우면서, 작게, 진짠데 하자 백기가 다시 그를 보며 알았다고 웃는다.




아닌게 아니라, 아버지와 이렇게 전화까지 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된 건 백기의 공이 컸다.


열 여덟, 정체성에 대해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찾아왔던 같은 반 첫사랑과 그의 집 앞에서 떨리는 입맞춤을 하던 날, 해준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던 매서운 눈초리에 해준의 아버지가 계셨다. 누나가 있었지만 어찌됐건 하나뿐이었던 당신의 아들의 원치 않은 커밍아웃은 아버지의 분노를 남겼다. 그 때까지 매 한 번 든 적 없으시던 아버지는 해준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하셨었다. 그 때는, 아버지도, 해준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어찌 해야 할지 모를 때였다.



그렇지만 세월은 흘렀고 이해의 폭은 넓어졌다. 무엇보다 해준이 모든 면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시곤 아버지가 점차 해준의 다른 면들도 이해해 주기 시작하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도 없다는데. 하물며 해준 자신이 원한 일도 아니라는 것까지 깨달은 아버지는 종국에는 그를 안쓰러워하시기도 하셨지만 표현은 여전히 서툰 분이셨다. 넌지시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냐며,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하자고 먼저 말도 건네오셨지만 한 번 벌어진 틈이 쉽사리 좁혀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은 소개 시켜드리고팠던 사람, 그것이 백기였다. 워낙 평소에도 말이 없던 가족이라, 백기 씨네 가족이랑은 많이 다를겁니다, 를 사전에 공지해주고 데리고 나간 자리에서, 해준은 그 날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워낙에도 예쁜 사람이라 누구에게든 사랑받을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백기의 환한 웃음과 살가운 한 마디, 한 마디가 더해지자 아버지가, 웃으셨다.



- 나 우리 아버지 웃는 거 처음 봤어요



대리님 아버님이요, 너무 좋으신 분 같아요 라는 퍽이나 들뜬 백기의 한마디에 해준이 어색하게 답하자 오히려 놀랐던건 백기였다. 그리고 그는 해준과 상관없이도 아버지께 열심히 전화를 드리고 해준이 하지 못하는 안부를 묻곤 했다. 그에게서 아버지, 저 백기에요, 하는 목소리를 듣는 건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원래 가족이었던 것처럼, 백기는 그렇게 해준의 가족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었고 점차 해준과 아버지의 사이를 좁혀 놓았다.








*





"아- 배불러요"



크림 파스타도 엄청 많이 먹어놓고, 배부르다면서 기어이 사 온 조각케익 한 조각을 다 먹는다. 당연한 듯 쇼파에 길게 기대 앉아 서류를 열심히 넘기고 있는 해준의 무릎을 베고 눕던 백기는, 이리저리 리모콘을 눌러 영화채널에 맞춰둔다. 한 손으로 골똘히 서류를 들여다보던 해준이 늘어지게 누워버린 백기를 보곤 쿡, 웃었다. 그리고는 무릎 위에 놓여진 백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준다.



"보통은, 애인이 이렇게 일을 하면 옆에서 거들어주던데,"
"나 오늘 강해준 대리님 부사수 아니고 애인으로 있는거잖아요. 장백기 사원 어제 퇴근했습니다"
"와, 장백기"
"그리고 보통은, 주말에 이렇게 예쁜 애인 옆에 두고는 일을 안하죠"



졌다. 완벽한 해준의 패배였다. 원인터 철강팀 3년차 사원 장백기, 그리고 강해준의 2년차 연인 장백기는 실적만큼 언변술도, 뻔뻔함도 늘리는 모양이었다. 내 말 맞죠? 하면서 안경 너머로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얄밉다가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해준이 결국 참지 못하고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다시 영화가 나오는 화면으로 눈을 돌리던 백기는, 그러면서도 슬쩍 해준이 쥐고 있는 서류를 보면서 대충해요, 어차피 오늘 안 끝나. 내일 회사가서 도와 줄게요. 한다. 이건 뭐, 이제 제 머리 꼭대기에서 이리저리 저를 흔들고 있으니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진다.





"백기야"
"네?"


그래, 오늘만 날이냐 싶어 해준이 끝내 보고 있던 서류를 내팽개쳤다. 내내 화면에 집중하던 백기가 해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쪼옥, 해준의 입술이 백기에게 닿아왔다.




"네 말대로, 우리 애인님이 너무 예쁘셔서"
"아, 나 영화..., 으읍,"
"보통은, 주말에 이렇게 멋진 애인 옆에 두고 영화만 보진 않지"



우리 강해준 애인님, 응용력도 좋으시지. 제가 뱉은 말을 그대로 돌려 받은 백기가 못말린다는 눈빛을 보내자 해준이 씨익 웃고는 백기를 반쯤 일으켜 깊게 입술을 머금었다.





"흐응..., 대리,ㄴ..."
"내 사수로 온 거 아니라며"


회사도 아닌데 자꾸 대리님 할래? 해준의 귀여운 핀잔에 백기가 얼른 입을 합, 다물고 호칭을 고친다. 해준씨.., 옳지. 어느새 백기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그의 허리께부터 지분대기 시작하던 해준이 단호하게 칭찬하자 백기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2년이나 되었어도 해준씨라는 호칭은 여전히 좀 낯부끄럽다. 워낙 대리님이 입에 붙은 탓도 있지만 부르기만 해도 유해지는 듯한 느낌의 해준씨라니. 영 낯간지럽다. 그럼 자기라고 부를래? 표정 하나 안 변하던 해준의 제안에 히익 기겁을 했던 백기는 곰곰히 생각하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기도 해 차차 열심히 고쳐보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하앗.., 대ㄹ.., 해준, 아니.. 자, 자기야, 여기는.."
"후.. 왜.., 하나만 불러. 하나만"



여긴 거실이고, 쇼파도 아닌 맨 바닥에서 일을 치뤘다가는 다음날 제 등짝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이 사람 자꾸 달아오르기만 한다 싶어 백기가 얼른 몸을 일으켜 다시 해준에게 키스를 했다. 천천히 그의 손을 이끌어 저를 다시 안게 해 침실로 향하는 백기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다. 뒷걸음질 마저 익숙하다니, 여긴 네 집이니 내 집이니. 하지만 해준 역시 그의 리드가 싫지 않아 잠자코 백기의 움직임을 따른다.








*





"아으.."


저녁이라기보다는 밤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는 캄캄함 속에, 하얀 색 니트를 입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를 한 백기가 조용히 침실을 나와 캡슐머신을 작동 시켰다. 쪼로록-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향긋한 커피 내음이 집 안 가득 퍼지자 뭉근하게 올라오는 통증이 느껴져 허리를 두어번 주먹으로 팡팡 내리친다.




"많이 아파...?"



헐. 그걸 말이라고. 어느새 백기의 뒤에 다가온 해준이 그의 니트 위로 허리를 꾸욱 꾸욱 눌러주며 묻자 가늘게 실눈을 뜬 백기가 토라진 표정으로 그를 돌아 보았다. 미안. 백기의 샐쭉한 얼굴에 풀이 죽은 해준이 시선을 피하면서 열심히 허리를 문질러 주자 백기가 피식 웃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데, 매번 그렇게"
"장백기가 너무 이쁜걸 어떡해"



와, 방금 녹음했어야 해. 철강팀 강해준 대리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걸 원인터가 알아야 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랑 고백을 하는 해준은 2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을 일이다. 벙찐 백기에게 해준은 또 아무렇지 앟게 다가와 쪼옥, 하고 짧게 버드키스를 건넨다. 그리고 백기가 내려놓은 커피를 마치 제 것인냥 가져가 한모금 마시고 백기에게도 한모금 마시게 했다.





"밤 늦게 마시면 다시 잠들기 어렵잖아"
"내일 출근 안하는데요 뭐. 누구 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배고파?"
"아뇨, 생각 없어요. 해준씨는요?"
"나도. 파스타 너무 많았어"



영화 보다 잘래요. 백기는 다시 찬장으로 가 안주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대충 접시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들고 총총 쇼파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마음이 따뜻해져온다.




제 집 마냥 물건들의 위치를 알고 익숙한 차림새로 앉아 리모컨을 누르며 채널을 조정한다. 늘 쓸쓸한 공기 냄새가 가득했던 제 침대 옆자리는 언젠가부터 장백기의 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가 이 집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따뜻함이 있고 그가 이 집안에 들어서면서부터 흑백 뿐이던 세상에 색깔이 입혀지는 것 같았다. 변화인줄도 모르게 찾아온 변화. 어느 순간, 액정에 뜨는 아버지 세 글자를 보고 더 이상 숨을 한 번 참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백기는 해준을 변화시켰다.




미처 사랑이라 깨닫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이별해야했던 첫사랑. 그리고 차마 사랑이라 밝히지 못해 속앓이 하던 지난 시간들. 제가 상대를 향해 품은 마음이 순수한 우정이 아니었기에 끝내는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던 외로운 순간들. 그래서 백기가 좋아해요 대리님, 이라고 가늘게 떨리던 마음을 고백 해 왔을 때 쉽사리 그의 손을 잡지 못했었다. 결국엔 너도 내 곁에 머무르진 않을거잖아. 한 때의 어린 마음까지 상대해주기엔 해준 자신이 너무 많은 풍파를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백기는 닫혔던 해준의 마음을 두드렸고, 열리지 않을 땐 뭐라도 들고 와 깨부수려 노력했다. 나도 좋아해요 장백기씨, 어렵사리 열린 그 마음새로 들어온 예쁜 연인은 따뜻한 눈물로 해준의 얼어붙은 마음을 모조리 녹여내었다. 그렇게, 머무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던 백기는, 해준에게로 스며 들었다. 마치 원래 그랬어야 하는 그림인 듯 쇼파위에 앉은 백기의 모습이 너무도 어울리는, 지금처럼.





"백기야"
"네"



자꾸 영화를 방해하고 싶진 않은데 뭐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제 쪽으로는 돌려지지 않는 그 얼굴이 재밌기도 하고 살짝 야속하기도 해서 자꾸 말을 건네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시선은 스크린에 고정인 채 대답하는 백기의 모습에 해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결혼 할까, 우리?"


툭 내던져진 한마디에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백기의 시선이 해준에게로 머문다. 대답은 없이 한동안 깜빡이기만 하는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해준이 괜시리 머쓱해져 백기가 손에 든 맥주 캔을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깜빡깜빡. 멀뚱히 쳐다만 보는 그의 눈빛이 혹시 거절을 하는 건가 싶어 해준이 얼른 말을 덧붙인다.




"양 쪽 부모님들도 다 아시고 우리 벌써 2년이나 되었잖아"
"...."
"법적인 절차는 밟을 수 없겠지만, 우리끼리 작은 언약식이라도. 가족들이랑."
"...."
"너 대부분 여기에서 지내는데 굳이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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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야"
"네"



자꾸 영화를 방해하고 싶진 않은데 뭐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제 쪽으로는 돌려지지 않는 그 얼굴이 재밌기도 하고 살짝 야속하기도 해서 자꾸 말을 건네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시선은 스크린에 고정인 채 대답하는 백기의 모습에 해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결혼 할까, 우리?"


툭 내던져진 한마디에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백기의 시선이 해준에게로 머문다. 대답은 없이 한동안 깜빡이기만 하는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해준이 괜시리 머쓱해져 백기가 손에 든 맥주 캔을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깜빡깜빡. 멀뚱히 쳐다만 보는 그의 눈빛이 혹시 거절을 하는 건가 싶어 해준이 얼른 말을 덧붙인다.




"양 쪽 부모님들도 다 아시고 우리 벌써 2년이나 되었잖아"
"...."
"법적인 절차는 밟을 수 없겠지만, 우리끼리 작은 언약식이라도. 가족들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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