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현재는 이러한 변화도 즐기고 있다. 악역이라는 틀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캐릭터 옷을 입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계획했던 에너지의 70% 이상은 쏟아부을 수 있었단다.
"걱정보다도 새롭고 신선했죠. 급하게 작품을 시작했고, 한도준 설명이 많지 않아서 고민 많이 했죠. 한도준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그려지진 않았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도 많고 대중이 열광해줘서 아쉬운 것보다 감사한 게 더 많아요. 선한 얼굴 때문에 양아치 같은 감정이 센 캐릭터나 누아르 장르물 캐스팅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왕자같이 반듯하고 순수한, 모든 사람을 떠안아줄 것 같은 캐릭터가 많이 왔죠. 남자라면 여러 거친 캐릭터도 하고 싶잖아요. 친한 친구들은 한도준을 보고 '네 성격 그대로'라고 장난치기도 했어요. 사실 인간 조현재는 평범하잖아요. 화나면 화내고 욱하는 성격도 있고요."
그가 연기한 한도준은 유약한 악인이다. 비서의 얼굴에 대놓고 컵을 던져 산산조각내는 광기가 있지만, 믿는 부하 하나 없고 끊임 없이 불안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결말 역시 자신을 살리려는 김태현(주원 분)을 믿지 못하고 제 발로 죽음을 자초하는 무모한 캐 릭터였다. 정작 조현재도 한도준이 죽을지는 몰랐단다.
"(컵 던지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는 말에)악랄한 게 좋았어요. 생각 같아서는 비서를 발로 한 대 더 차고 있었어요. 괴팍한 성격인 데 화나면 이 정도로 어마어마하단 걸 보여줘야 했어요. 한도준은 굉장히 무모하고 그릇된 판단을 계속하고 삐뚤어져 있고 절대 굽히지 않는 미친 사람이죠. 그래도 결말이 죽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도 눕게 될 줄 몰랐고요. 법적으로 어딘가에 방치되거나 도망가지 않을까 또는 여진이가 용서하지 않을까 상상했죠."
악역 변신에 시청자를 비롯한 주변에서 달라진 반응들이 쏟아졌다. 드라마 캐릭터 인기의 지표라는 '식당 아주머니 반응'에서 가장 쉽게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엔 그런 상황이 별로 없긴 하지만 예전엔 식당 아주머니들이 친근하게 대했어요. 모자에 안경을 써도 목소리를 듣고 '왕자 님 오셨다'고 알아보고 음식 서비스로 주고요. 지금은 좋아해 주긴 하지만 뒤에서 슬쩍슬쩍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속닥속닥 이야 기하고 못 본 척하더라고요?(웃음)"
선과 악, 가장 분명한 경계를 뛰어넘었으니 이제 어떤 연기가 장벽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한도준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이 앞으로는 어떤 캐릭터와 겹쳐 보일지 호기심이 솟았다.
"원래 분량 같은 게 중요하진 않아요. 처음부터 그런 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연기를 배웠거든요. '한 컷에 살고 한 컷에 죽는다'. 혼신을 다해 연기해라. 그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