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11시를 넘긴 시각, 지하철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방화행 5호선 열차 안에는 앉을 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았을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칸에 20명은 족히 넘었다. 밝디 밝고 사람도 많은 그 곳에서 한 노인이 20대 초중반의 여자분을 성추행하고 있었다. 그 노인은 여성이 앉은 자리 앞에서 몸을 수그린 상태로 여성이 신은 구두의 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등의 행동들을 했다. “내 나이가 70이 넘었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따위의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는 일들. 지하철의 추행현장과 그 주변에 가만히 앉아있는 성인남녀 승객들. 그 상황을 등지고 문 앞에 서있었던 나는 그 노인을 째려보다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자분의 손을 향해, 그리고 그 노인의 머리 위를 지나 손을 내밀며 여자분에게 눈길을 주었다. 처음엔 눈을 똥그랗게 뜨던 그녀가 몇 초 후 바로 내 손을 잡고 일어났고, 그렇게 그녀는 다른 자리로 옮겼다. 불편한 상황은 중단되었고, 그제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고맙다 했지만… 사실, 그 여자분도 나도 하늘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그 이후에 우리 둘에게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분명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 칸에 있었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여러 복잡한 생각과 계산을 하면서 앉아있었겠지만, 그녀가 곤혹스러워하는 순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차갑게 굳은 표정이 풀리지가 않았다. 나와 그녀는 운이 좋았다. 만약의 위험한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하고서도, 무작정 손을 내민 나도 대비가 부족했다. 좋게 마무리가 되어도 그런 안일함마저 반성해야 할 세상이라니. 얘기를 들은 엄마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세상인거지”라고 하신다. 미래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면, 대체 뭘 어떻게 설명하고 교육해야 하는 걸까? 피가 흐르는 상황이 발생한 후에는 그 칸의 모든 사람들이 움직인다 해도, 또다시 큰 안타까움과 미안함만 남을 텐데… 성추행을 목격하며 피까지 상상해내는 내가 예민한 거였으면 싶다,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