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위기 속에서 숙종 43년(1717) 숙종은 사관·승지를 배제한 채 노론 영수인 좌의정 이이명과 '정유독대'를 실시했다.[3] 이때 숙종은 이이명에게 연잉군과 연령군을 부탁한다는 청을 하였는데, 사관을 들이지 못하게 한 이 독대 사건은 후일 신임옥사 때 이이명의 발목을 잡는다. 독대 직후 숙종은 느닷없이 세자의 대리청정을 명령했는데, 『당의통략』은 “(노론이) 세자의 대리청정을 찬성한 것은 장차 이를 구실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3] 와병 중이었던 소론 영중추부사 윤지완은 82세의 노구였으나 관을 들고 상경해 군신 독대를 격렬하게 비난했다.[3]
“독대는 상하(上下)가 서로 잘못한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상국(정승)을 사인으로 삼을 수 있으며 대신 또한 어떻게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지위로서 임금의 사신(私臣)이 될 수 있습니까?(『숙종실록』43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