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가득 배인 눈길로 병연을 바라보던 라온은 긴 한숨을 쉬며 자 아리에 앉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영이 툭 한마디 했다.
“저 녀석 볼 때와 날 볼 때의 눈빛이 전혀 딴판이구나.”
말하는 영의 목소리에 은근하게 가시가 돋아났다. 참 으로 이상한 것이라온이 ‘김 형, 김 형’ 할 때마다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어미 닭을 찾는 병아리처럼 처소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김 형, 김 형 찾아대는 모습이라니.
“그라......보이셨습니까? 제가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 ”
“피곤해?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숙의마마의 글월비자 노릇을 하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숙의전?”
영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라온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루 종일 발품만 팔았겠구나. ”
“어? 어찌 알았습니까?”
“숙의전에서 글월비자 노릇을 하는 환관이라면 주상 전하께 서한을 전하는 것일 터. 주상 전하께서 숙의마마께 보내는 서한의 답신일랑은 궁 안의 공공연한 비밀 인데, 그런 답신을 들고 다녔으니 헛발품 판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느냐.”
영의 말에 라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주상 전하께서 숙의마마께 어떤 내용의 답신을 내리셨는지도 모두 아신다는 말씀입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두 분 사이에 오가는 서한의 내용은 궁 안의 공공 연한 비밀이라고. 소문에 둔한 너 같은 사람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이다.”
“설마요?” 아무리 궁이라고 해도 어찌 그런 것까지 소문이 돌 수 있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