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는데 몇 번이나 같은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요?
언젠가 그렇게 물었던 남자가 있었다. 석진은 의사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10월 13일, 남자가 보내온 생일 파티 초대장이었다. 몇 년째 꼬박꼬박 보내오는 초대장이 신기하기도 했고 대단하기도 했다. 석진은 초대장을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직접 그린 수채풍 일러스트가 아기자기했다. 꼭 자기 같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밖 벤치에 앉아있자니 가을볕이 따사로웠다. 은행나무는 벌써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참 좋은 가을날이구나. 석진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삶을 사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한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다.
2007.10.13.
그 날은 지민의 스무 살 생일이었다.
가족과 함께 교외로 드라이브 겸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민의 아버지는 항상 라디오를 켜고 운전을 하셨다. 라디오에선 왈츠 리듬의 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지민에게도 낯익은 멜로디였다. 지민이 단조 멜로디를 낮게 흥얼거렸다. 앞좌석에 앉은 부모님은 이따금씩 대화를 나누셨고 동생은 옆에서 핸드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저번 달 요금이 많이 나와서 혼났는데 괜찮으려나. 지민은 멍하니 창밖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토요일 밤 교외의 국도는 적당히 한산했다. 차창 밖 풍경은 어둠이 짙었고 이따금씩 멀리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아버지의 승용차가 작게 흔들렸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예고 없이 깨졌다. 끼익-!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이 났다. 대형 트레일러가 전복되며 그대로 지민과 가족들이 타고 있던 차를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교통사고다.’ 그걸 인지하자마자 지민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지민이 번쩍 눈을 떴다. 입에선 숨이 가쁘게 터져 나왔다.
헉… 헉… 헉……. 지민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온 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겨우 눈을 굴렸다. 여긴 어디지? 그 생각부터 들었다. 낯선 방이었다.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민만 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머릿속으로 꼬리에 꼬리를 잡고 의문이 이어졌다. 방금 전의 사고는 뭐지? 꿈일까? 그러나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아니면, 지금이 꿈속일까? 지민은 혼란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였다. 침대 밑으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
작은 일기장이었다. 지민이 그것을 주워들었다. 조금 망설이다 표지를 넘기니 첫 장부터 글씨가 빼곡했다. ‘지민이에게.’ 그렇게 시작하는 편지였다.
지민이에게.
안녕, 지민아. 나는 23살의 박지민이야.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너는 지금 몇 살이 되었을까. 일어나고 많이 놀랐지? 분명 교통사고가 났는데 일어나보니 낯선 곳이어서. 걱정하지 마. 사고는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니까.
지민아, 너는 그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 보통 기억상실증이랑은 달라. 한 번 기억을 잃고 끝이 아니라 1년 마다 계속 기억을 잃고 있어. 매년 10월 14일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면 도로 20살 사고까지의 기억을 가진 박지민으로 돌아가는 거야. 믿기지 않으면 달력을 확인해봐. 미래라 생각했던 숫자가 지금의 연도일 테니까. 또 거울을 보면 네가 기억하는 20살이 아니라 훌쩍 나이를 먹은 낯선 모습의 박지민이 있을 거야.
지민은 편지를 읽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방을 두리번거리다 화장실로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거울이 보였다. 이내 거울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민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분명 2학기 개강하면서 난생 처음 머리 염색을 했는데 어느새 머리는 흑발이었다. 얼굴 생김새도 달라져있었다. 알던 모습보다 더 성숙한 얼굴이었다. 정말로 스무 살보다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지민이 떨리는 손으로 거울 유리를 매만졌다.
나는 그 사고로 딱 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21살 10월 14일에 눈을 떴어. 회복된 뒤에는 퇴원을 하고 학교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 그렇게 다시 평범하게 살고 있었어. 1년 뒤인 22살 10월 14일에 도로 20살의 기억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기억을 또 잃은 23살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을 잃을 거라는 판정을 받았어. 매년 10월 14일마다 20살 때로 기억이 리셋되는 거야. 지금 너에게 교통사고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도 이 기억상실증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워할 미래의 나에게 이 편지를 남기기로 했어. 10월 14일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지민아,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지만 네가 꼭 알아야할 게 있어. 그 사고로 가족들은 모두 죽었어. 너만 머리를 크게 다치고 겨우 살아남았어. 가족들이 있는 납골당 주소 남겨놓을 테니까 꼭 가보도록 해. 밑에 담당 의사선생님 번호도 적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보고. 물론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많이 힘들 거야. 그치만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분명 행복한 기억도 많았어. 그걸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줬으면 해.
너의 이번 1년도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민이가.
추신. 26살의 박지민이 덧붙인다.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간간히 일하고 있어. 호석이 형 알지? 호석이 형이 주로 일을 연결해주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맞은편에서 ‘메리-고-라운드’라는 카페를 해. 호석이 형은 내 병이랑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메리-고-라운드로 찾아갈 것.
편지는 덧붙인 추신으로 끝이었다. 지민은 새하얀 뒷장을 의미 없이 더 넘기다 일기장을 덮었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머릿속이 바쁘게 엉켰다.
일단 일기장을 어디에라도 두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캘린더가 보였다. 10월임을 알리는 숫자 옆에 적힌 연도는 ‘2015’였다. 지나치게 어색한 숫자라 지민은 잠시 멍해졌다. 어제까진 분명 2007년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하니 8년이나 흘렀다. 지민은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 나이를 셌다. 그럼 나는 지금 28살이겠구나. 그러다 힘없이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나이를 하나하나 세야한다는 이 상황이 우스워서였다.
일기장은 책상의 두 번째 서랍 안에 넣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이었다. 옅은 크림색의 커튼 너머로 햇빛이 비쳐왔다. 지민은 이끌리듯 그 앞으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커다란 창밖으로 파랗고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공기가 서늘했다. 지민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무엇을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파란 하늘, 서늘한 공기, 아우터를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는 분주한 사람들, 분명 보이는 것들은 지민이 알고 있던 가을 그대로인데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지민은 한참동안 창가를 떠나지 못했다.
변하지 않는 것
영화 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2015.10.14.
지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납골당에 가는 것이었다. 나란히 놓인 가족들의 사진과 유골함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진짜임을 알려주었다. 지민은 가족들의 앞에서 거의 한나절을 울었다. 진이 쏙 빠지도록 울고 나니 밖이 어둑해져있었다.
2015.10.16.
“지민 씨는 측두엽, 특히 해마에 손상이 컸어요. 보통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순행성 혹은 역행성 기억상실증이 일반적인데 지민 씨처럼 주기를 갖고 기억을 잃는 케이스는 해외에서나 가끔 보고될까, 국내에선 지민 씨가 첫 사례입니다.”
지민은 자신의 뇌 MRI 사진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사실 이것도 매년 설명하는 말인데, 7년 째 똑같은 패턴으로 얘기하려니 양심에 좀 찔리네요. 의사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김석진’이라는 명패의 이름과 단정하게 잘생긴 얼굴은 분명 지민에겐 초면이었다. 그러나 석진은 지민을 잘 아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지민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웃기만 했다.
대학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도 훌쩍 올라있었다. 처음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민은 빈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쳐가는 거리의 모습이 낯설었다. 십 년 가까이 흘렀으니 당연하겠지만 아직 적응이 힘들었다. 지민이 어색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바(Bar) 모양의 핸드폰도 낯설었다. 사고 전까진 까만색의 폴더폰을 썼다. 수능이 끝나고 부모님이 사주신 최신형이었다. 그러나 이제 거리에서 그런 모양의 폴더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의 홈 버튼을 누르다 도로 화면을 잠가버렸다.
어? 순간 지민은 흠칫 놀랐다. 방금, 사용법도 모르는데 손이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잠갔다. 기억은 없는데 분명 사용법을 알고 있다. 그걸 깨닫자 지민의 가슴이 뛰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아주 작은 조각을 만난 것 같았다.
2015.10.20.
‘Merry-go-round’
그렇게 쓰인 간판 앞에서 지민의 걸음이 멈췄다. 편지에서 알려준 그 카페였다. 낮은 목조울타리와 작은 화분들에 둘러싸인 1층 건물이었다. 지민은 한참을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 이윽고 결심하고 문을 열었다. 유리문이 열리자 짤랑거리며 방울소리가 났다.
“왔어?”
카운터에 있던 남자가 지민을 맞았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또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지민이 입술만 겨우 달싹였다. 호석이…형? 조심스레 묻자 호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따뜻한 카페라떼에 시럽 조금.”
“…감사합니다.”
지민이 어색한 투로 인사를 했다. 몸짓이 영 뻣뻣했다. 그 모습에 호석이 웃었다. 웬 존대냐. 이젠 나도 기억 못해? 툭툭 걸어오는 장난은 지민이 알던 호석
記住,這不是要再愛同一個人的多少倍?一天有一名男子曾要求。石金把醫生的手放在口袋裡,掏出一件長袍的東西。10 月 13 日,男子被送的生日派對邀請。幾年不總是返回邀請是精彩的、 令人驚歎。石金看邀請輕笑了笑。直接的綠色水槽的插畫風格是寶貝。就是這個主意那自我同一張照片。約翰尼,一些溫暖的一家醫院外的長椅上坐。銀杏已經染成黃色的樹葉。尼斯的秋日。石金是極大的驚嚇,伸展。這個故事是一位特別,與生活在一種特殊的方式,一個人一個人愛過另一個男人的故事。在 2007.10.13。那天是邊緣的 12 歲的生日。開車去郊外與我的家人,在回來的路上吃晚餐。打開收音機和邊緣,父親總是駕駛。華爾滋的音樂節奏的收音機,一條線,播種。它是著名的動畫電影的配樂。有了熟悉的旋律讓吉民。低白蛋白不是單調的旋律哼唱著。坐在前排的座位和我的父母聊了一會兒和哥哥旁邊手機遊戲們沉浸在。收費很多婚姻上月來試要罰我。吉民,看著窗外,它袖手旁觀的這種想法。星期六晚上,在郊區路線是適度地安靜。黑暗的黑暗和燈光閃爍走了一段時間,窗外風景。它是最平靜的日常生活。父親的震撼小客車。沒關係,它是一個非微不足道的事物,對任何人。但和平分手恕不另行通知。成熟的-插入 !比如破 macaleumi。它是從字面上有大型拖車,推翻,擊中一輛汽車,搭乘他們的家庭。它是在瞬間發生了什麼事。儘快結束這次交通事故︰ 男人從字面上失去了精神。“……!!”為愛閃爍,女孩不覺醒。在嘴裡的呼吸好。哈克......哈克......哈克......吉民挑了慢慢地呼吸。全身都汗濕了。隻眼翻滾。我們在哪裡?從認為。這是一個陌生的房間。家庭成員似乎不是。冀閩只躺在床上一個人。舉行尾巴視覺化問題。只是事先對這次事故?夢?然而,夢想就是如此生動,太。或者,現在,在這個夢想嗎?冀閩產生困惑的身體。那是何時。拿走了東西在床底下。“…….”原來是一個小小的日記本。吉民把它撿起來。有點翻蓋的第一章從西田埂刻字正忙著。公民。 那是一封信開始。冀閩。嘿,吉民。我今年 23 歲公園冀閩。讀這封信,你現在幾歲了我很驚訝,很多發生的嗎?到一個陌生的地方醒來的清晰的交通事故。別擔心,現在這就是已經在幾年前,事故;。紀民-啊,你在那次事故及其後果作為患上失憶症的頭。它是不同于平常的健忘症。失敗並不是記憶的結束每年一次,你失去了你的記憶保持。每年的 10 月 14 日,這已 20 歲道路事故的喚醒和公園繼敏的記憶中驚醒。如果你相信要簽出的日曆。我想未來的某年,數量是現在。此外如果你看看鏡子,你要記住今年 20 歲了流鼻涕,不是年齡,它將會奇怪的看公民。冀閩做讀字母跳發生。這個房間看上去看廁所跑進的地方。只是儘快門鏡子。它看著鏡子內從字面上石化由於其外觀。吉民不相信你忘了閉著眼睛。他在鏡子裡的出現是一個陌生人。顯然,第二學期狗告終的頭部的染髮劑是 heugbali 的第一次硬了。它也改變了人世間。我知道它是更加成熟的面貌比。真的吃得更多比二十歲的年齡。吉敏于鏡子玻璃僅用顫抖的手。我有只是 sigmulingan,因為一年中發生的意外,今年 21 歲躺在 10 月 14 日,睜開眼睛。恢復後的放電和開始回到學校。所以我一直回去住。一年後,22 歲 10 月 14 日,這條路回到 20 歲的記憶。23 歲又回到和在醫院裡失去的記憶和期待會失去對案情要記住。每年的 10 月 14 日,當 20 歲的記憶重置每個。現在你也喜歡生動交通事故昨天,健忘症。所以期待著能早日失去迷茫未來回憶我決定離開這封信。10 月 14日日,生活的每一個人是誰,這能告訴你。紀民-啊,現在我寫一封信,也不可接受的但你必須明白。那次事故,全家人都死了。你的頭髮會大大傷害和僥倖躲過了。家庭必須解決地下墓穴,你會看到掛下負責你看見發生了什麼事,如果是,請聯繫號碼做醫生。當然,你不能接受很多的要硬一會兒。你不記得了,但顯然很多幸福的回憶。不忘住它。너의 이번 1년도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지민이가.추신. 26살의 박지민이 덧붙인다.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간간히 일하고 있어. 호석이 형 알지? 호석이 형이 주로 일을 연결해주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맞은편에서 ‘메리-고-라운드’라는 카페를 해. 호석이 형은 내 병이랑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메리-고-라운드로 찾아갈 것.편지는 덧붙인 추신으로 끝이었다. 지민은 새하얀 뒷장을 의미 없이 더 넘기다 일기장을 덮었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머릿속이 바쁘게 엉켰다.일단 일기장을 어디에라도 두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캘린더가 보였다. 10월임을 알리는 숫자 옆에 적힌 연도는 ‘2015’였다. 지나치게 어색한 숫자라 지민은 잠시 멍해졌다. 어제까진 분명 2007년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하니 8년이나 흘렀다. 지민은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 나이를 셌다. 그럼 나는 지금 28살이겠구나. 그러다 힘없이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나이를 하나하나 세야한다는 이 상황이 우스워서였다.일기장은 책상의 두 번째 서랍 안에 넣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이었다. 옅은 크림색의 커튼 너머로 햇빛이 비쳐왔다. 지민은 이끌리듯 그 앞으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커다란 창밖으로 파랗고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공기가 서늘했다. 지민이 어깨를 움츠렸다.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무엇을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파란 하늘, 서늘한 공기, 아우터를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는 분주한 사람들, 분명 보이는 것들은 지민이 알고 있던 가을 그대로인데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지민은 한참동안 창가를 떠나지 못했다.변하지 않는 것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를 모티브로 했습니다.2015.10.14.지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납골당에 가는 것이었다. 나란히 놓인 가족들의 사진과 유골함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진짜임을 알려주었다. 지민은 가족들의 앞에서 거의 한나절을 울었다. 진이 쏙 빠지도록 울고 나니 밖이 어둑해져있었다.2015.10.16.“지민 씨는 측두엽, 특히 해마에 손상이 컸어요. 보통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순행성 혹은 역행성 기억상실증이 일반적인데 지민 씨처럼 주기를 갖고 기억을 잃는 케이스는 해외에서나 가끔 보고될까, 국내에선 지민 씨가 첫 사례입니다.”지민은 자신의 뇌 MRI 사진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사실 이것도 매년 설명하는 말인데, 7년 째 똑같은 패턴으로 얘기하려니 양심에 좀 찔리네요. 의사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김석진’이라는 명패의 이름과 단정하게 잘생긴 얼굴은 분명 지민에겐 초면이었다. 그러나 석진은 지민을 잘 아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지민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웃기만 했다.대학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도 훌쩍 올라있었다. 처음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민은 빈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쳐가는 거리의 모습이 낯설었다. 십 년 가까이 흘렀으니 당연하겠지만 아직 적응이 힘들었다. 지민이 어색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바(Bar) 모양의 핸드폰도 낯설었다. 사고 전까진 까만색의 폴더폰을 썼다. 수능이 끝나고 부모님이 사주신 최신형이었다. 그러나 이제 거리에서 그런 모양의 폴더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의 홈 버튼을 누르다 도로 화면을 잠가버렸다.어? 순간 지민은 흠칫 놀랐다. 방금, 사용법도 모르는데 손이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잠갔다. 기억은 없는데 분명 사용법을 알고 있다. 그걸 깨닫자 지민의 가슴이 뛰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아주 작은 조각을 만난 것 같았다.
2015.10.20.
‘Merry-go-round’
그렇게 쓰인 간판 앞에서 지민의 걸음이 멈췄다. 편지에서 알려준 그 카페였다. 낮은 목조울타리와 작은 화분들에 둘러싸인 1층 건물이었다. 지민은 한참을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 이윽고 결심하고 문을 열었다. 유리문이 열리자 짤랑거리며 방울소리가 났다.
“왔어?”
카운터에 있던 남자가 지민을 맞았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또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지민이 입술만 겨우 달싹였다. 호석이…형? 조심스레 묻자 호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따뜻한 카페라떼에 시럽 조금.”
“…감사합니다.”
지민이 어색한 투로 인사를 했다. 몸짓이 영 뻣뻣했다. 그 모습에 호석이 웃었다. 웬 존대냐. 이젠 나도 기억 못해? 툭툭 걸어오는 장난은 지민이 알던 호석
正在翻譯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