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닥 쳤어.” KBS ‘1박 2일’에서 배우로서 망가지는 이미지를 걱정하는 김준호에게 김주혁은 이렇게 말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슬프게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단순히 첫 예능 고정 멤버로서 영구 흉내를 내고, 현지 주민 인지도 및 인기 조사에서 최하위를 달려서만은 아니다. 2002년 SBS 에서 소위 ‘서브 남주’라 할 수 있는 대기업 후계자 민태훈 역을 맡으며 본궤도에 올랐던 그의 경력은 최근 2~3년 동안 완만한 하향세를 그렸다. 최근작인 MBC 과 의 시청률은 동 시간대 경쟁 드라마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영화 는 이름부터 대구를 이루는 7년 전의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더는 의 민태훈이나 의 수헌, SBS 의 강태민처럼 감성적인 도시 남자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그의 나이는 어느새 마흔둘. 그리고 이젠 스스로 바닥을 쳤노라 말한다.
이성적 매력이 인기의 당락을 크게 좌우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40대란 불완전한 30대와도 같아서, 30대에 전성기를 누린 40대의 남자 배우는 종종 선택을 강요받는다. 더는 멜로의 중심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극이나 주말 가족드라마로 자리를 옮기거나, 정우성이나 차승원처럼 여전히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중년의 메트로섹슈얼이 되어야 전성기에 준하는 비중의 배역을 얻고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이뤘기에 지키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나이. 그래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나이. ‘한국의 휴 그랜트’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지난 두 편의 사극에서 몸에 붙는 수트 대신 갑옷이나 한복을 입고 수염을 붙여 등장했던 김주혁에게 ‘1박 2일’ 고정 출연은 그런 승부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박 2일’을 통해 드러난 김주혁의 민얼굴이 매력적이라면, 무엇을 얻거나 잃지 않겠노라는 욕심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사실 예능에서 드러난 그의 허당 캐릭터는 의외라는 반전 매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 ‘1박 2일’ 시즌 1에서 이승기가 보여주던 그것보다 재밌거나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1박 2일’에서의 김주혁이 흥미롭다면, 단순히 어수룩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해서다. 그는 함께 합류한 데프콘처럼 예능 유망주가 되겠노라는 의욕을 보이진 않지만, 음식을 얻기 위해 이빨에 김을 붙이고 영구 흉내 내는 걸 꺼리진 않는다. 미션 수행을 위해 본인 얼굴을 팩스로 보낼 때도 왜 이걸 하느냐고 투덜대는 일 없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얼굴을 직접 복사기에 대고 출력해 어떻게든 제작진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일에선 허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영역에서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 초보자로서 새로이 겪어야 하는 일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건 인성의 영역이다. 서열상 맏형에 배우로서 스타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40대의 남자가 그 권위에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건, 매력적이기 이전에 새롭다.